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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몽요결 - 율곡 선생의 인생 가르침 (커버이미지)
격몽요결 - 율곡 선생의 인생 가르침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이율곡 지음, 이민수 옮김 
  • 출판사을유문화사 
  • 출판일2022-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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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오직 한 가지 변할 수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마음과 뜻이다” ― 「입지장」 중에서

자신을 갈고닦는 법의 전범을 보여 준 율곡 이이의 명저

『격몽요결(擊蒙要訣)』은 조선 시대의 대학자이자 정치가인 율곡 이이가 1577년(42세, 선조 10년)에 후학 교육을 위해 집필한 정신 수양서로, ‘격몽’은 몽매한 자들을 교육한다는 의미고 ‘요결’은 그 일의 중요한 비결이란 뜻이다. 이 책은 저술 당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로 간행되었고, ‘이이 수고본(手稿本) 격몽요결’은 보물 제602호로 지정되어 있다. 유학자들의 필독서였던 이 책은 오랜 세월 동안 그 빛을 잃지 않고 현대 독자에게도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이번에 을유문화사에서 발행되는 이민수 번역의 『격몽요결』은 오랫동안 고전 분야 부동의 베스트셀러로 저력을 발휘해 온 번역본의 표지를 바꾸고, 내용을 좀 더 가독성 있게 다듬어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이 책은 『격몽요결』 원전을 충실하게 번역하고, 한문 원문도 함께 실었으며, 다른 동양 고전의 내용을 함께 곁들인 해설을 통해 본문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또 제의에 관한 ‘부록’도 빼놓지 않고 실어 이 책의 모든 것을 고스란히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해
가까이하고 실천할 만한 지침들로 이루어진 책

이이는 「서문」에서 이 책의 목적은 학문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뜻을 세우고 몸을 삼가며 부모를 모시고 남을 대하는 방법을 가르쳐 마음을 바로 닦고, 도를 향하는 기초를 세우도록 노력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이는 이와 함께 학문을 닦지 않고서는 올바른 사람이 될 수 없다고 하면서, 다만 학문이란 까마득히 높고 먼 것이 아니라 날마다 행동하는 데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 책은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격언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가까이하고 실천할 만한 유효한 지침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이 스스로도 오랫동안 우물쭈물하던 자신을 반성하면서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듯이, 품격 있는 마음으로 나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한 선각자가 후학을 위해 남기고 싶었던 진실한 조언이 녹아 있다.
책의 탄생 배경을 살펴보면 이 책은 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사림파가 정권을 잡고 국정 전반에 본격적으로 나서던 시기에 학문을 통해 사림파의 이념을 사회 저변에 확산하기 위한 근본적인 노력의 일환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당시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반드시 읽어야 했던 유학 입문서로 자리 잡았고, 1635년 왕에게 이이를 문묘에 종사할 것을 건의한 유생들이 이 책을 『성학집요』와 함께 그의 대표적인 저술로 꼽기도 했다. 하지만 유학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기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격몽요결』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읽히는 이유는 시대를 관통하는 삶의 진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뜻을 세우는 일부터 사회에 나가 처신하는 일까지, 예나 지금이나 단순하게 설명하기 어렵고 녹록지 않은 일들을 하나하나 다루고 있다. 때로는 학문의 엄숙함이나 성인(聖人)이 되어야 한다는 포부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때로는 말을 많이 하고 생각을 많이 하는 일이 마음에 해롭다는 울림 있는 조언을 던지기도 하고, 자세를 반듯하게 하고 눈을 똑바로 뜨라는 구체적인 지침까지 아끼지 않는다. 특히 삶의 마디마디에서 힘겨운 한 걸음을 떼고자 하는 이들에게 와닿을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지침들이 담겨 있다.

마음을 세우고 삶의 품격을 높이는 열 가지 덕목

이 책은 모두 열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입지장」에서는 학문하는 모든 사람이 뜻을 세우고 성인(聖人)이 되기를 목표로 하여 물러서지 말고 나아갈 것을 당부한다. 2장 「혁구습장」에서는 학문 성취를 향해 용감히 나아가기 위해 떨쳐 버려야 할 것에 대하여 말한다. 3장 「지신장」에서는 몸을 지키는 방도를 제시하여 뜻을 어지럽히지 말고 학문의 기초를 마련할 것을 권한다. 4장 「독서장」에서는 책 읽는 방법을 가르치고 독서의 순서를 알려 준다. 5장 「사친장」에서는 부모를 섬기는 방법을 얘기한다. 6장 「상제장」과 7장 「제례장」에서는 주희의 『가례』에 따라 상제와 제례를 할 것을 권한다. 8장 「거가장」에서는 부부간의 예를 비롯하여 집안을 다스리고 가산을 관리하는 방법을 말한다. 9장 「접인장」에서는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교양을, 10장 「처세장」에서는 과거를 거쳐 벼슬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자세를 싣고 있다. 그리고 부록 「제의초」에서는 각종 제례의 내용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저자소개

1536년, 중종 31년 강릉 오죽헌에서 이원수와 사임당 신씨의 아들로 태어나다.
1551년, 모친 신 부인의 상을 당하다.
1554년, 우계(牛溪) 성혼(成渾)과 교제하다. 이 해 3월에 금강산에 들어가 불가의 선학(禪學)을 탐구하다.
1555년, 속가(俗家)로 돌아오다.
1556년, 책문(策文) 시험을 보았는데 한성시(漢城試)에서 장원으로 뽑히다.
1557년, 성주목사(星州牧使) 노경린(盧慶麟)의 딸과 결혼하다.
1558년, 예안으로 퇴계 선생을 찾아가다. 퇴계 선생과 더불어 학문을 강론하고 율시(律詩) 1편을 지어 드리다.
1561년, 부친 찬성공(贊成公)의 상을 당하자, 사임당 묘소에 합장하다.
1564년, 생원 진사과에 합격하고, 다시 명경과에 급제하여 호조좌랑을 제수받았다. 이때부터 관직 생활에 접어들었다.
1569년, 「동호문답(東湖問答)」을 지어 선조에게 바치다.
1571년, 해주에서 파주 율곡으로 돌아오다. 이조정랑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이 해에 향약을 짓다.
1572년, 우계 성혼과 더불어 이기(理氣), 사단칠정(四端七情),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을 논하다.
1574년, 우부승지로 승진되고 「만언봉사(萬言封事)」를 올리다.
1575년, 「성학집요(聖學輯要)」를 지어 바치다.
1576년, 파주 율곡으로 돌아오다. 관직에서 은퇴할 것을 결심하다.
1577년, 『격몽요결(擊蒙要訣)』이 이루어지다. 초학자들의 학습을 위하여 저술한 책이었다.
1578년, 은병정사(隱屛精舍)를 짓다. 주자(朱子)의 무이정사(武夷精舍)에 견주어 지은 것이었다. 이때부터 원근의 학자들이 더욱 많이 찾아왔다. 이 해에 다시 「만언소(萬言疏)」를 올리다.
1579년, 『소학집주(小學集註)』가 완성되다.
1580년, 『기자실기(箕子實記)』를 편찬하다. 이 해 대사간으로 부름을 받고 나갔으나 사은(謝恩)하고 곧 돌아오다.
1582년, 이조판서에 임명되어 세 번이나 사양했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이 해 7월에 「인심도심설」을 지어 바치다. 또 『김시습전』을 짓다. 8월에는 형조판서가 되고, 9월에는 의정부 우참찬이 되다.
1583년, 조정에 나아가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하다.
1584년, 정월 16일에 병환으로 한성 대사동에서 작고하다.
1610년, 선생과 퇴계 선생을 문묘에 배향하자고 주청하다.
1611년, 문집이 간행되다.
1624년, 문성(文成)이라는 시호가 내려지다.

목차

해제

서문(序)



1. 입지장(立志章)

2. 혁구습장(革舊習章)

3. 지신장(持身章)

4. 독서장(讀書章)

5. 사친장(事親章)

6. 상제장(喪制章)

7. 제례장(祭禮章)

8. 거가장(居家章)

9. 접인장(接人章)

10. 처세장(處世章)



부록_제의초(祭儀抄)

출입의(出入儀)

참례의(參禮儀)

천헌의(薦獻儀)

고사의(告事儀)

시제의(時祭儀)

기제의(忌祭儀)

묘제의(墓祭儀)

상복중행제의(喪服中行祭儀)



율곡 이이 행장기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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